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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언니전지현과 나


추천으로 본 다큐
망해버린 게임(이하 망겜)과 그 망겜을 여전히 플레이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되게 현실적이라서 심장이 차가워졌다.
매크로 밖에 안남은 망겜. 망겜이 핵, 매크로, 개인의 불법 프로그램으로 온통 범벅이 되는건 한두번 보게되는 광경은 아니다. 모든 게임들이 그런 일을 한번즈음 겪지만 보통의 게임사들은 그런일을 막기 위해 열과성을 다하고 게임사에서 버려진 게임들은 개인의 불법프로그램들 양식에 방치당한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도 안다. 왜 내가 하는 게임이 망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여전히 이 게임을 하고 있는지.
더이상 그렇게 재밌지도 않고(중지된 컨텐츠, 신규 유입 0)
새로운 사람들도 없다. 그런데 왜 우린 아직도 망겜을 계속하는 걸까?

내가 스타크래프트2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아는 사람의 숫자 10명내외)
다큐에 나온 일랜시아에 비해 스타크래프트2는 망겜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도 민망하지만 나름 말을 붙여본다면 망겜이라기보단 밀려난 게임에 가깝다.
요즘 게이머들은 신작게임을 쉽게 즐기고 또 다음 신작게임으로 쉽게 넘어간다. 매 분기에 새 게임이 쏟아지는 시대다. 스팀같은 게임유통서비스로 인해 더 쉽게 새 게임을 접할 수 있다.
아무리봐도 새 게임을 나오자 마자 즐기고 또 다음 게임이 나오면 다음 게임을 즐기러 가는게 건강하고 자유로운 게이머의 모습처럼 보인다. 한때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쉽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것 같아 보여서.

시대에 뒤쳐진 게임. 밸런스도 맞지 않고 게임사도 더이상 관리하지 않으며 무거운 게임 엔진을 쓰고 최적화도 되지 않는 그런 게임을 우리는 왜 계속하는 걸까?

시대에 뒤쳐진 게임도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여전히 플레이어에게 준다. 근데 그게 망겜을 플레이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계속 스타크래프트2를 플레이하는 이유는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들이 동력원이 된다. 또는 전에 같이 해줬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단 사람들이 재밌어요.'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돌아온 rpg들을 보자. 메이플랜드도 그렇고 와우 클래식도 비슷하다. 구린 디자인과 인터페이스(하지만 추억이 있다면 구려보이지 않고 오히려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고전미가 느껴짐.) 친절하지 않은 게임 플레이 방식에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간 이유가 뭘까. 추억때문이다. 마치 그 시절 게임으로 돌아가면 그 시절이 돌아오고 그때 같이 재밌게 플레이 했던 사람들이 돌아올까봐.

Rpg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또는 길드 시스템이 있는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처음엔 게임을 위한 게임을 했다면 나중엔 사람을 위한 게임을 해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길드의 성장을 위해서. 길드에 들어온 사람들을 위해서. 나랑 잘 맞던 플레이어와 같은 시간에 접속해서 게임보다 채팅을 더 많이 했던 추억. 3시간만 하고 끌까 했던 게임을 사람들 때문에 밤을 새워서 했던 기억. 무슨 일이 있으면 인게임에서 모여서 축하를 하고 같이 특별한 날들(새해라던가 크리스마스같은)에 11:59분에서 00:00으로 넘어가는걸 기념하던 순간들.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채팅에서 최대한 욕설을 쓰지 않고 존댓말을 씀) 고작 인터넷 가상 인연임에도 상처받았던 일들 ..... 고작 게임 인연임에도 '신뢰를 잃기 싫어서' 안절부절 못했다는 사연. 특정한 게임에서 일어난 일은 그 특정한 게임의 장소에 박제된다. 우리는(적어도 나는) 그런식으로 게임을 추억한다. 어떠한 일 때문에 그 게임을 영원히 안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좋았던 추억 때문에 그 게임을 가끔씩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그곳에는 더이상 그때 그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떤관점으로보면 현실감각이 없어보이고 과거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유저가 다 떠난 게임 붙들고 있는 것보다 빨리 사람이 많이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게 더 가성비 있는 행동처럼 보인다. 10여년전 출시한 게임 채팅에 앉아 그때 그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나타나길 기다리는게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허무맹랑한 일일까. 실제로 망겜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길 기대한다기보다 추억을 계속해서 되새김질 하고 있을 뿐일거다. 게임을 계속하다보면 그 게임 플레이가 어느새 내 일상의 한부분으로 들어오고 어느새 습관이 된다. 그러니 망겜을 계속하는 건 처음에는 게임이었을거고 나중엔 사람 때문이었을거고 종국에는 습관일거다.

다큐를 보면서
인게임 내에서 고액의 사기를 당한 일랜시아 유저 하루히로님이 남긴 채팅과 짱돌잉님의 인터뷰말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공감이 갔다.

그저 게임일 뿐인데.... 또 그 게임을 사람이 플레이한다는 점에서.. 그러나 우린 서로를 모르고 이 게임을 끄면 사라지는 인연일 뿐인데. 이건 단지 게임일 뿐인데. 그 문장이 나에게 맴돈다. 인게임 구현이 부족하고, 관리자도 없고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게임. 제작자가 서버 접고 떠나면 끝일 뿐인 게임. 제작자가 서버를 접지 않는다고 해도 나 자신이 떠나면 끝일 뿐인. 그냥 게임.

막을 수 없는 망겜으로 가는 흐름. 게임사는 유저 전원을 통제할 수 없고 우리는 시대를 막을 수도 없다. Rts 장르의 게임은 이제 rts 마니아 외에는 주목을 하지 않는다.

고향 같은 게임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몇몇 게임에 두고왔다.
유한한 추억의 디스크다.

이 다큐는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게임사의 사정과 유저의 사정은 망겜에 한해서는 아예 별개의 일이니까.
시간은 유한하고 해마다 유저들을 사로잡기 위한 새 게임들이 쏟아진다. 망겜 유저들은 서로 너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는 거 아니지?한다. 어떻게 그동안의 추억과 여기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을 두고 떠날 수 있냐고 하겠지만 정말 게임은 게임일 뿐임으로...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쉬운 것이며... 언젠가 헤어지는 날이 온다.

어릴 때 재밌게 했던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이 기억난다. 모험가라는 직군 뿐이고 그때 그때 패치에 따라 오버밸런스 캐릭이 있던 시절이라 이번 시즌은 비숍이 강하다는 선임자들의 말에 따라 막연히 비숍을 키우고 동생과 3시간 교대로 했던 게임. 야후에서 서비스되던 아르피아라는 게임은 아직도 스토리가 생생하다. 지도 하단의 사막지역을 탐험하다가 나는 중학생이 됐다. 중학교 때 친구의 소개로 시작한 웹마피아라는 게임이 플레이스토어에서 서비스를 시작하자 폰에 설치해서 새벽 내내 사람들과 8인방, 12방, 17인방을 돌아가며 마피아, 타뷸라 게임을 했던 것, 엘레쥬라는 미연시 게임을 즐기며 커뮤니티에 글도 활발히 썼던 것, 내가 직접 길드를 만들어 길드장을 했었던 모 폰게임, 내 노트북엔 항상 깔려 있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다커서 메이플스토리를 시작하려고 하니 이제와서는 너무나도 많은 직업, 생각보다 오랫동안 플레이 해야하는 피로감에 매번 초반퀘를 하며 버닝 이벤트때 200을 갔다가 다시 접는게 반복된다. 아르피아는 야후의 서비스 종료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웹마피아도 제작자가 서비스를 접었고 최근에서야 다시 되살려보는 듯하지만 게임 한판에 여러명이 동원되어야 하는 마피아/타뷸라 특성상 유저수 부족 문제를 겪는게 가장 최근에 본 소식이다. 엘레쥬는 비비빅이라는 게임 서비스 사이트 종료로 사라지나 했으나 게임파일을 다시 되살려 배포해주는 펀딩을 받았고 나는 최근 다시 엘레쥬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과거에 이미 엔딩을 다 본 상태였고 새로울거 하나 없이 반복된 게임만 살아돌아왔을 뿐 유저간의 소통창구인 커뮤니티는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길드장을 했던 모 폰게임에서는 길드원 관리에 부담감을 느껴 부길마에게 길드장을 넘겨주고 도망치듯 게임을 떠났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나와 같이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게임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몇년전에는 한 두명이었고 이제는 8명 정도는 된다. 한번이라도 같이 해준 사람을 꼽으면 숫자는 더 는다. 우리는 같이 게임을 보고, 애기하고, 추억하고, 웃고, 욕하고, 한탄한다. 게임 스토리를 파고들고, 종족에 대해 예찬하고, 분석하고, 더 많은 것들을 상상했다. 영화화가 될거라 기대하기도 했고 내년에 리그가 있을거다, 스폰서가 있을거다. 기적을 바라기도 했었다. 매해 그런 마음들은 꺾이고, 소모되고, 줄어든다. 나쁜의미가 아니라. 시간이 감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매번하는 말이 있다. 나와 같이 게임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여전히 늘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간다. 언젠가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가 다시 나에게 추억이 되겠지. 그래도 지치기 전까진, 게임이 진짜 망해버리기 전까진. 우리 같이 게임하자.